난, 토마토 싫여! #1
2017-04-20 오전 10:10 kcr 조회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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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머님이 당첨되셨어요!
그랴?
 그런데 이건 워따 쓰는건디?
 네, 이것을 가지고 마켓에 가셔서 물건을 사시면 되세요. 이안에는 $50.00 이
들어있어요.
 그랴?
 그런데 그럼 50불은 현금을  줘야 내가 이카드하고 가지고 가서 물건을 달라고
해야하는 거잖아?
 아니, 어머님 그런게 아니고요…  이카드를 직접 가지고 가셔서 물건을 사시면 돼요. 
그랴?
 그럼 이카드만 가지고 가도 되는건감?
그럼요!
 다른 신분증은 안가지고 가도 되고?
 네 , 
그런디, 이카드만 가지고 갔다가 물건 안주면 워쩔겨?
 어머님, 그런 걱정 마시고요…
 여기 이 000마켓에 가셔서 물건을 달라고 하시면 물건을 줄꺼예요.
 참, 시상에 돈도 아닌데 이카드 한장 가지고 가면 물건을 준다고?
 아무튼 좋은 시상이여!
 다민족 어르신들이 이 모여사는 저소득층 아파트에 카운셀러로 일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동안의 일한 경력과  경험들을 토대로  추천을 받아서 오랜시간 동안의 협의끝에
지금하는 일 이외에 조금 더시간을 내어  정해진 시간대로 일을 하기로 하였다.

우선 내가 시카고에서 시애틀로 이사올 90년초기에 10여년간 노인복지 쪽에서 일을
하였기 때문에 노인들 복지혜택과  정신건강문제는  별로 어려울것 같지도 않고  
시간도 현재 일하고 있는 홈리스프로그램이 일주일에 정해진 시간이 아웃리치시간과
더불어 자택근무가 허용되기에 그시간을 활용을 하면 충분히 할수있는 일이기에  
4개월간의 심사숙고 끝에 결국 근무하기로 결정하고 일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내가 파악한것은 한국민족들의 우수성이었다.
어디를 가보아도 한국어르신들이 리더 역활을 하시는것을 보았다.

 물론 다민족이 모여 사시는 노인아파트에서 한국분들이 1/3을 차지하고 그외에는
월남분, 러시아, 인도, 캄보디아, 중국, 아프리칸 ,프랑스분,미국분들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기에 어쩌면 한국말과 영어를 하며 다민족들하고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내가 이곳에서 함께 일을할수가 있게된것 같다.
 
여러민족의 어르신들이 모여 사는 이곳에 중국분들도 많이 계신데 이프로그램에서
일을하기전 시애틀시의 노인복지프로그램으로  6개월간 중국 노인회를 활성화 시키는
프로젝트를 맡게되었던 경험들은 내가 중국분들을 알수있는 좋은 경험들이었다.

  중국노인회를 활성화 시킬수있는 프로그램에 출근한 첫날부터 거의2개월간은
이분들에게 왕따를당하고 있는기분이 들었다.

  노인회에 오시는 분들은 저소득층으로 이곳에 나오면서 점심도 해결하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다이치운동도 하고,  또 노인분들이 좋아하시는 빙고게임도하고 지내시면서
당신들끼리 모여서 고향얘기, 음식얘기, 자식들이야기들을 스트레스 안받는 중국 말로
실컷 즐기는 곳인데 어쩐일인지 이노인회의 멤버가 급속히 줄어들면서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지않자 시애틀시에서는 이노인회를 문을 닫기 전에 일단은 감독관리를 하자는
계획 안에 나를 책임자로 파견시킨 것이었다.
 
중국분들은 참으로 검소하고 어쩌면 지독하다고들하는 이야기들을 들었기에 대충
이분들의 생활습관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분들하고 직접 겪어보니 진짜
이분들의 검소한점은 우리 모두가 배울만 했다.
 
이분들이 즐겨하시는 빙고게임에 넘버가 찍혀있는 탁구공 모양의 공들을 담아두고
한개씩 꺼내어  번호를 부르는데 이공들이 담겨져있는 박스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박스를 보면 이게임의 역사를 알수있을것 같았다.
 
내가 이 낡아빠진 박스를 교체하려고 이분들에게 묻지않고 새박스로 교체 하려던것이
얼마나  잘못된 아이디어인줄을 알게된것은 얼마되지않아서 였다.
 
이분들이 점심식사로 나온, 양념이 덜밴 중국식 건강식으로 식사를 마치고 다 떠나신후
나는 그헌박스를 청소하시는 분에게 버리라고 부탁드리고 새박스를 구입해서 이분들이
좋아하게끔 예쁜 색으로 입혀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내가 다른일로 그곳에
간시간이  11시즈음된 아침시간인데  웬지 분위기가 이상한게 느껴져왔다.
 
누가  아직도 쓸만한  박스를 버렸냐고 호통을치시다 그박스를 치운 사람이 나란걸
아시자 그분들이 중국말로 열심히 나에게 훈계하시는데 그중 조금 영어를 하시는
분에게 물어보니 아직도 쓸만한 박스를 없애버렸다고 원망하시는 것이란다.
 
평소에는 그분들이 하는언어가  만다린, 켄토니스, 스치완니스들이 겹쳐서 모든 말들이  
정신없이 들려서 내가 이곳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내귀는 중심을 잃고 나는 정신줄을
놀판이었다.
 
어느말도 제대로 들리질 않고 키친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중국사람 청소를 담당하면서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분도, 영어는 거의 못하고 중국말만 하니 여기모이는 70여명중
나혼자만이 영어를 해야되는 그야말로 이분들의 상황을 파악하려면 내가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아니 ? 중국말도 하고 영어가 가능한  카운셀러를 불러다 놓지, 나를 왜 이런 곳에?
 한참을 골치가 아파서 생각하다가 내상사하고 얘기를 해보니 중국말이 수십가지가
있어서 어느 한가지 말을 하는 사람을 데려다놓으면 편애한다고 난리를 쳐서 아예
중국말이라고는 쒜쒜 밖에 못하는 나를 이곳에 파견시킨것이 의도적이라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이곳에 파견근무하는 6개월간 나는 처음 2개월간 이분들에게 완전히 왕따 당하고,
이분들의 마음에 들지않게 박스를 교체해버린 것때문에 또 왕따당하고, 이분들이
후드뱅크에서 나오는 음식들 배분하는데 자기들끼리 전통적으로 해온 방법들을 내가
다른방법으로 바꾸려고 하자 이분들의 심기가 불편하여 또 왕따당하고 ,후드뱅크에서
트럭으로 물건이 도착을 하면 이분들 중에 힘쎈 왕할배 ,왕할매님들이 먼저 좋은
물건들을 뒤로 빼어놓고는 자기들끼리 분배를 하고 그 나머지물건들을 분배를 하는것을
몇번이나 목격한 내가 물건이 도착하면 어느 누구도 물건을 빼돌리게 못하였더니 그
다음에는 물건이 도착을 하여도 힘쎈 왕할매 왕할배 그 누구도 물건을 내리는데
도와주려고 하지를 않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이곳의 복지계획을 활성화시키는게 목적인데 왕할매, 왕할배들의
반란으로 나는 물건들이 도착하면 그물건들을 안에까지 끌고 들여와 펴놓고 분배를
하였고 그때 그 누구도 나의 일을 도우려는 분들이 없어서 한참을 내가 고생을하면서
 ( 진짜 ,이때는 교통사고후에 후유증도 많을때라 허리도 아픈상황이었다. )70명의
물건들을 70개의 종이봉투에 배분하여 정확히 배분하기를 두달째 가 되니까, 그것도
어떤 계기가 되어 한분씩 한분씩 내가 하는 일에 동참을 하기 시작하였다.
 
계기가 된것은  여기 오시는분 중에 치매가 있으신 분이 있었는데 데 본인이 식사를
하셨는지 제대로 잘모르시는 분이었고 이분의 부인은 남편을 이곳에 내려놓고
이프로그램을 마칠때까지 4시간을 샤핑도하고 다른일도 하면서 보내다가 이프로그램이
마치는시간에 오셔서 남편을 픽업을 하시는데 남편분이 당뇨약을 점심시작 전에 먼저
먹어야하는데 매번 잊어버리는것을 지켜본 내가 가뜩이나 이분들 중국말은 하나도
못하고 새로운 계기를 만드는  나를 저만치에 버려두고 왕따시키는중인지라 나 역시
내가 이곳을 얼마나 버티려나? 하고 고민을하면서도 나를 이곳에 보낸 이유는 분명히
있을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져보면서( 말이 안통하고 내가 말을하여도 들으려고 하지도
않으니까) 정확한 시간에 치매이신 분들 몇분의 약을챙겨드시게 하는나를 바라보는
140개의 눈들에의해 보여졌나보다.
 
이곳에서 일해야 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즐겁기는 커녕 짜증이 나기도하고 신경이
예민해지기도 하였지만 조금후에 내린 결론은 내가 이분들을 끌고가지 말고 지켜보면서
이분들을 도와주자라고 결론을 내리고는 내사무실에서 나온 이후로는 이분들을
지켜보기만 하자! 라고 하면서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지켜보기만 하자 이분들은
안움직이는 나를 답답해 하다가는 움직이기를 시작을 하였다. 
드디어 이그룹들의 리더들인 왕할매 왕할배들의 마음들이 열리기 시작을 하는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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