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걸어가는 삶 #2
2018-08-02 오전 9:21 KCR 조회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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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로 와서 시애틀한인회에 속한 노인반영어를 가르치게 되면서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게 되면서 이어른들의 고충이 영어가 안되어 받을수있는 베네핏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보면서 노인복지쪽으로 관심을 돌려 노인복지를 담당하는 카운셀러로 일하면서 이곳, 미국에 미국사람과 결혼을 하셔서 혼자 오셔서 사시다가 돌아가신 분을 화장시키고 그분의 재를 후손들이 있는 한국으로 보내드리기도 하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였고( 이분은 자식들을 뒤로 두고 그자식들에게 삶의 도움이 되고자 연세가 아주 많은 미국분하고 재혼하고 오셔서 남편이 한푼두푼 주는 돈을 아끼고 아껴서는 자식들에게 보내주시기도 하셨고 나중에는 남편이 별재산없이 돌아가시자 나라에서주는 베네핏으로 받는 돈을 당신을 위해서는 전혀 안쓰시고 당신은 차이나타운시장들을 돌면서 버린 야채등을 줏어다가 음식을 만들어드시면서 자식들에게 돈을 보내시기도 하였는데 나중에 이분이 돌아가셔서 연고자를 찾는 중에 한국의 아들하고 연결이 되어 어머님유골을 보낼테니 그곳에 잘모시라고 부탁을 하니 그망할놈의 아들 은 여기에 오셔도 제사드릴 사람도 없으니 그냥 바닷가에 뿌리라는 대답을 들으며 세상에 너같은 인간은 살아도 사는것이 아닐거다.

라며 악다구리를 퍼부었던 생각이 난다.
시카고에서 공부를 마치고  하와이로 직장을 찾게된 것이 그곳 지역의 학교 카운셀러 일이었다. 그때에는 스쿨디스트릭에서 카운셀러 한명을 고용한후에  3학교를 맡기었다. 내가 맡고 있던 학교는 오하우에 마카킬로 지역의 국민학교와 2차대전중에 엄청난 전쟁의흔적으로  난파된 배를 전시하고 있는 펄하버 그리고 리후아 국민학교 등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세학교들을 돌면서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운 아이들, 부모하고의 어려운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특별활동을 만들고 이아이들이 제대로 자랄수있기를 고대하며 학교에 근무하는 동안 최고의 정성으로 아이들을 돌보았던 기억이 난다. 하와이에는 많은 동남아이민자녀들은 여유롭게 살고 있는데 오히려 하와이안 어린아이들가정들이 정부보조에 의지하여 사는가정들이 많았었다. 나는 이아이들의 학교가 마친후 과외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칠수있는 청소년들에게 과외 활동시간들을 점수를 줄수있는 봉사 시간을 만들어 어린아이들의 공부와 게임을 돕게 하면서 방과후에 화와이 바닷가를 누비고 지냈다. 물론 우리아이들도 함께…

그리고 시애틀로 이주를 하면서 시애틀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잠시동안 살다가는 세상에서 만년을 살것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때가 많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간혹가다가 정신차려 생각을 해보면 내게 주어진 시간이 한없이 펼쳐진것 같이 생각이 들다가도 아니지, 이건 아닌거야…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은 좀더 삶을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이들은 사람들을 이끌며, 어떤이들은 사람들을 밀어주며, 어떤이들은 이들과 함께 걸어가면서 삶을 나누어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한테는 홈리스가정들, 저소득층, 정신적인 문제들을 갖고있는 사람들, 그리고 중독자들이 많이 찾아온다.

가끔씩 일을하다보면 이들과의 일들이 너무 많고 벅차서 숨이 찰때가 있다.
그리고는 지쳐서 나가 떨어질때가 있다. 두해전부터 나를 찾아오는 46살 먹은 2세 청년이 있다. 국민학교 1학년때 미국에 와서 부모님은 미국생활에 적응하느라 어린꼬마를 집에 두고 일터로 다니며 먹을것을 차려놓고는 가끔씩 공장에서 일하다가 잠깐 아이에게 전화를 걸고 잘있냐? 등 안부를 확인하고 그렇게 지냈단다. 아이는 혼자 밥먹고, 혼자놀고, 혼자 학교엘 다니다가 중학생이 되자 자기를 아껴주는 동네 멕시칸형님들하고 친하게 되면서 갱단에 가입을 하게 되었고, 아이는 집에서는 누릴수없는 관심과 이들이 주는 사랑에 마음을 주게되며 이들과 갱단에 합류를하게되면서 온갖 범죄에 연루되고 나중에는 코케인까지 하게 되어 결국은 중독자가 되었다. 이 아들은 감옥을 제집처럼 드나들면서  부모님의 집에서 값진물건들을 훔쳐서 팔아 약을 하게 되고 결국은 자기가 갖고있던 시민권 번호까지도 몇백불에 팔아넘겨서는 자신은 유령인이 되어버렸다. 어느 누군가가 이아들의 쇼셜넘버와 시민권번호를 가지고 베네핏을 타고있으니 이친구는 영락없는 유령인간이 된것이다.
 
이젠 나이도 들고 몸도 망가져버린 이친구의 베네핏을 찾으러 몇번을 이민국을 드나들었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해결이 안되었는데 이친구가 하도 많은 범죄를 저질러서 어쩌면 더어려운일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룹홈에 살면서 우리의 도움을 받고있는데 어찌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룹홈에는 약물중독자, 정신이상자, 등등이 함께 살아가는데 이친구가 약만 먹으면 이들이 자기를 괴롭힌다면서 소리소리를 질러대고 행패를 부려서 난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많은 미국사람들 틈에 동양인이라고는 자기혼자인데 미국친구들하고 가까이 지내야 도움이라도 받을판인데 밤낮으로 고함과 행패를 부리니 이곳 룰에 어긋나면 나가야 하는데 난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 시애틀 저소득층 집사정이 너무 어렵기때문에 이곳에서 쫒겨나가게 되면 길바닥으로 나가야하는데 여름에는 어떻게 버틴다고하여도 시애틀의 겨울은 말로 할수없게 에린 으슬으슬한 빗물과 함께하는 추위인데…. 또 나를 찾아오는 홈리스중에 장님이 있는데 백인 니코친중독자이다. 이제 며칠있으면 우리 킹카운티에서 마련해주는 그룹홈에 들어가게 되는데 난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친구가 지끔까지 어떻게 홈리스생활을 했는지 궁금하다.
 
눈이 보여도 집이 아닌 길거리에서 생활하는것이 어려운 세상인데 이친구 나이도 벌써 40줄에 들어서는데 어찌 그동안 살았는가 싶어서 난 이친구만 보면 가슴이 아프다. 물론 이친구역시 중독자이다. 어찌 중독자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친구의 서류에는 어릴적 부모에게서 버림받았다고 나와 있다.
그많은 세월을 어찌 살아왔는지… 어찌하였든 난 무지무지 열심히 이들의 베네핏을 위해 서류를 작성하고, 잊어버린 쇼셜넘버를 찾아내고, 무료변호사를 찾아내어 함께 일하며 이친구가 필요한 나라에서 주는 베네핏을 받게하고는 이제 드디어 두달후면 이친구는 평생에 처음으로 자기만의 아파트로 입주를 하게 된다. 며칠전 장님인 이친구가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손을 잡고  내사무실로 나를 따라 들어오다가  나에게 말을 건다.Regina I really wanted to see you even I moved to apartment… 레지나, 내가 아파트로 들어가 살게 되더라도 난 레지나를 만나러 오고 싶은데…. 난 이친구의 손을 꼬옥 잡아주며 말을 했다.( 이친구들이 떠나면 우리는 손을 비눗물로 깨끗히 씻어야 한다) 무엇을 만졌는지 모르니까…

난 앞에 서있는 내몸집의 두배나 되는 이친구를 쳐다보며 얘기를 한다.
물론, 내가 이사무실에 서일하는 동안에는 너를 꼭 만나줄꺼야!
이친구는 안보이는 눈으로 눈물이 한방울씩 흐른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난 그동안 이친구의 베네핏을 찾아내느라  얼마나 힘이들었던지 지난 두달전에는 폐렴이 심해서 2주간 직장도쉬고 병원신세를 치루기도하였는데 .. 술중독중이던 00는 어떻게든 술을 끊어보겠다고 작정을 하고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약을 먹으면서 킹카운티에서 주최하는 쎄컨찬스(범죄자나 중독자들에게 주는)쟙훼어에서일을 찾아서 하던중 일주일만에 이친구가 집으로 돌려보내어 지었었다. 이유는 묻지도 않은채, 이친구 열이 잔뜩나서 나를 찾아왔다.
아니, 내가 어쨌다고 나를 돌려보내냐고?
이친구가 다니는 직장 HR 디렉터에게 전화를 했다.
레지나, 그친구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려고 돌려보낸거야!
우리같은 공장에 술먹고오게되면  정말 위험한 일이거든…
전화를 마치고 00를 불렀다.
너의 선택이야 !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을래! 아니면 새롭게 살아볼래!
물론 어렵겠지만 키는 네가 갖고있는거야!
이친구 나를 빤히 쳐다본다. 다시 한번 해보겠다고!
그래! 잘해봐!  꼭 해봐!
내가 선택한나의 직장일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야하는 일이다. 
난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더욱노력을 한다.  
내어머니, 내할아버지 가 그러하셨듯이…  
이들과 함께 도우면서 살아갈수있는 삶이 나에게는 얼마나 큰 즐거움으로, 행복함으로 오는 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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