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 #2
2018-09-13 오후 2:00 KCR 조회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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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홈의 로비는 정신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라 개인청결이 관리가 안되어서 상상할수 없는 이상한 냄새로 숨을 쉬기 어려웠다.

 나는 일단 로비에서 뒷뜰로 나가는 문을 열고서 환기를 한 후 00씨 아들과 딸을 로비한쪽 테이블에서 00를 기다리게 한 후 나는 평소에 00씨가 자주 가는 파이크스트리트로 차를 천천히 몰면서 혹시라도 00씨를 찾을수 있을까 눈여겨 보면서 운전을 하였다.

평소에는 12시면 그룹홈에서 주는 밥을 먹으려고 들어온다던 00씨는 점심시간이 지나고도 한참을 들어오지 않았다..

00씨의 딸은 12시경이면 들어온다던 엄마를 기다리느라 입술이 타들어가는지 입이 마르고 기운이 없어했다.

나는 다시 사무실에 볼일이 있기에 00씨아들과 딸에게 아침 일찍부터 지금까지 기다리느라고 배가 고플테니 일단 점심을 먹고 엄마가 지금 안들어오시면 저녁 시간이나 들어오신다니 우리 저녁에 다시 만나요… 했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00의 기록들을 살펴보니 (그동안 00씨가 자주 다니던 거리)  이분이 그룹홈에 들어오기 전 자주 다니던 시애틀 다운타운3가 하고 예슬러길을 찾아 운전을 하면서 혹시라도 00씨가 있을까 찾아보았으나 00씨를 찾을수가 없었다.

 그룹홈의 저녁시간이 다되었는데도 00씨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퇴근도 해야하지만 00씨의 아들, 딸의 안타까운 마음에 쉽게 발을 떼지 못하여 한동안 그룹홈 로비에서 00씨의 아들과 딸과 함께 좀 더 00씨를 기다리다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밤9시경이 되었다.

 계절이 바뀌는때면 감기와 몸살 걸리기 쉬운게 나의 체질이다.

 하루종일 일때문에 바쁘고 00씨 찾아다느라 눈도 피곤하고 정신이 피곤했는지, 또 감기란 놈이 이때를 놓칠쎄라 몸이 아프기 시작하며 목이 아프기 시작을 했다.

남들이 보면 항상 씩씩해 보이는데 난 항상 골골골… 그래도 항상 밝게 웃으니까..

아무튼 이번에도 감기란 놈이 또 찿아온것같다.

 밤새 끙끙 앓고 새벽5시30분에 일어났다. 그리고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치고는 따뜻하게 옷을 입고 다운타운 내사무실로 차를 몰았다.

사무실에서 회사차로 바꾸어 타고는 그룹홈으로 갔더니 시간이 6시50분, 그룹홈의 로비로 들어서면서 새로 바뀐 직원인 엘리옷에게 인사를 하니 엘리옷이 인사를 한다.

 하이 레지나 투얼리?( 너무 이른 시간아니야?)

 나는 엘리옷에게 내가 지금 못오면 00씨가 아침 일찌기 나가버릴까봐…

 00씨는 어젯밤 9시가 넘어서 들어왔는데 아직 자기방에서 잠을 자고 있을꺼라고 한다.  나는 아침 7시30분쯤이 되어 6층 00씨 방문을 두드리니 이미 나갈 준비를 하고있던 00씨가 반긴다.

 이그룹홈에는80여명의 홈리스출신의 정신질환자들이 이곳에서 보호를 받으며 살고있는데 00씨만이 한국분이셨다 .이곳그룹홈에는 내고객 5명이 살고있는데 이분만이 한국분이시다.

 00씨는 한국에서도 좋은대학에 다니셨다. 대학생활때 미국에 먼저와 살던 남편을 한국에서 만났는데 남편은 한국으로 결혼을 하러 나왔다가 그곳 정신병원에 00씨 여동생이 우울증을 치료하러 다녔는데 그곳 정신병원에 근무하던 남편의 삼촌이 미국에서 나온 조카에게 환자의 언니를 소개해주어서 00씨와 남편의 만남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얼마후 00씨는 미국으로 와서 살게 되었는데 첫딸이 6살이 되면서 정신착란증이 시작되면서 딸아이가 16살되던 해는 00씨는 집에서 사라져 버렸었다.

물론, 00씨 남편과 시집식구들은 00씨를 사방으로 찾아보았지만  00씨는 연락이 두절되어 버리고 00씨 남편은 아내의 실종신고로 3년을 기다리다가 새로운 여자분을 만나서 재혼을 하게되고, 00씨가 낳은 딸과 아들은 친할머니손에서 자라게 되었었다.

이들이 엄마의 소식을 알게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한달전 내가 00씨 케이스를 맡게되면서부터였다.

 파일로 쌓인 00씨의 서류철을 꼼꼼히 살펴보던 내가 색이 바랜 오래된 서류한장을 발견했는데 자세히살펴보니 00씨의 40년전의 한국 집주소와 가족관계들이 한국말로 적혀있었다. 아마도 내전에 이케이스를 맡았던 카운셀러가 서류가 있는데 알아볼수있는 글이 아니니까 그냥 서류철에 끼워두었는데 내가 00씨를 담당하게 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00씨 서류 한장한장을 살펴서 검토를 하는데 00씨의 한국주소가 나와서 그주소를 가지고 한국에 있는 사회복지학교수인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 수소문해서는 이곳, 미국의 00씨 전남편 주소를 찾게되고 전남편이 자기의 아들과 딸에게 연락을 해주어서는 아들과 딸이 엄마를 만나러온다고 해서 한달동안 준비를 한 것이었다.

 00씨는 정신착란증이있다.

 우리는 안보이는 것들을 00씨는 보고 냄새도 맡기때문에 정상적인 사람들 하고의 생활이 불가능한데 처방약을 먹으면 거의 정상생활을 할수가 있는데도 본인이 약에다 자기를 죽이려고 독약을 넣었다고 불신을 하기때문에 절대로 약을 먹지않는것이었다 16살이던 딸은 이제 27살, 그밑에 아들은 25살, 집을 나간 엄마가 없어도, 재혼해서 새로 삶을 시작한 아빠가 없어도, 할머니손에서 아주 잘 자라났던 것이다.

이날 아침 밤새 엄마를 보려고 잠을 설친 아들과 딸이 그룹홈에 온다고 전화를 받은 시간이 아침9시15,분 나는 나가려고 꽃단장하고 아기들 장난감유모차에다 때가 덕지덕지 묻은 아기인형을 싣고서 아기 데리고 외출한다는 00씨를 이런저런 얘기로 붙잡아 두려고 과자와 아이스크림으로 정신을 모아두게 하느라 바뻤는데 00씨 아들과 딸은그룹홈으로들어서자마자 그룹홈로비 테이블에서 나하고 함께 있는 엄마가 장난감유모차를 굴리면서 장난감인형을 어르고 있는 모습을 보는 딸은 눈물을 흘리며 엄마를 외치며 00씨에게 달려오는데  정작 00씨는아무런 감흥이 없다.

내가 00씨에게 00씨 딸 제인하고 아들 00예요. 라고 가르쳐주자 00씨는 아니? 우리딸하고 아들은 아직 중학생이예요. 라면서 아들하고 딸을 멀거니 바라본다.

딸은 엄마를 껴안고 얼굴을 부비고 몸을 만지며 엄마의 기억을 도와보려 하지만 00씨는 아무런 감흥이 없이 자기앞의 장난감 유모차에 누워있는 아기인형만을 쳐다 보며 어이구! 우리 애기, 까꿍!까꿍! 어르고 있다.

아들도 눈시울이 빨개져서는 눈물을 흐리며 울고 서있다.

나는 이제는 소리내어 울고 있는 딸아이의 어깨를 감싸안으며 말을 해주었다.

너무 서운해 말아요(Don't feel bad)

엄마는 지금 자기세계에서 살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보기에는 엄마가 불쌍하고 안되보이지만 엄마는 지금 자기 혼자서 행복할수도 있어요. 

저기, 엄마 얼굴좀 보세요.

엄마 얼굴이 평온하잖아요?

그리고 속이 상하면 실컷 울어요!

나에게 안긴 딸아이는 11년전에 헤여진 엄마의 변한 모습에 너무 가슴이 아파서 이제는 내게 쓰러지다시피 안겨서 목놓아 울고 있다.

나도 00씨의 딸을 꼬옥 안아주며 눈물이 흐르는것을 그냥 놓아두었다.

 그런데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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