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트로이도 달을 볼수있을까 #2
2018-11-15 오전 10:16 KCR 조회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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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역시 홈리스가족들과 정신병을 가진분 들을 돕는 일을 하다보니 보통사람들보다는 죽음이라는 상황을 좀 더 자주 마주치게 된다.

금년 8월달 내 고객이었던 46살 홈리스였던 브루스를 말기암으로 보내고나서 나 역시 너무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죽기 3달전 애써 밝은표정으로 브루스에게 부르스 내가 너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은데 소원이 있으면 말해봐?

부르스는 자기가 못해본 일 소원 4가지를 나에게 얘기해주며 레지나가 나에게 해줄수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첫번째 스페이스니들에가서 점심먹어보는 것

 두번째 시애틀 다운타운에 있는 그레트윌 타보는 것

 세번째 캐나다벤쿠버에 사시는 자기의 남은 친척인  96세이모를 만나보는 것

 네번째 샌디에고에서 홈리스 생활하는 자기 쌍둥이 동생을 만나보는 것

 나는 부르스가 죽기 3달전부터 부르스의 소원을 이루어지게 하기위해 샌디에고의 비영리단체와 쇼셜오피스를 거의 다 연락을 해서 부르스의 잃어버린 동생도 찾아내었고, 부르스의 이모의  연락처도 찾아내었고, 부르스의 몸이 회복되어지면 스페이스니들에 가서 점심도 먹을수있게 하려고 있는 어느날, 몸이 더욱 쇠약해진 부르스가 그냥 떠나가버렸다.

 부르스가 떠나고 나서 나는 며칠간 아팠었다.

 우리들은 아무때고 해볼수있는 일들을 부르스는 죽기전에 해보고 싶은거 라고 했는데 하나도 해보지 못하고 떠나가버려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죽음은 우리에게 떠날수 없는 것이었다..

 얼마전 인터넷기사를  보면서 한참 눈물을 흘렸었다.

어느 젊은 청년이 정신과치료를 마치고 고속도로를 따라서 운전을 하고 가는 중인데

 저만치 뒤에서 고속도로 순찰차가 따라오더니 이청년의 차를 세운것이다.

청년은 자기는 과속으로 운전한 것 같지는 않은데 순찰차가 따라오니 길가로 멈추어서 잠시 순찰경찰이 오기를 기다리니 순찰차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순찰경관이 이청년에게 가까이 오더니 혹시 군대 다녀왔느냐고? 물었고 청년은 아 제가 군대를 제대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군대를 다녀온지는 어떻게 아셨는지요?

 라고 청년이 경관에게 묻자 경관은 별안간 잠시 말을 못하더니 아! 내가 청년의 차를 세운 것은 청년이 과속을 해서가 아니고 청년의 차뒤에 있는 파병군인들의 마크가 붙어있어서 그것을 보고 차를 세운것이라네!

 그런데 청년, 청년은 군대를 어디로 갔었는가?

 청년은 자기는 아프가니스탄 000지역에서 2년 6개월간 근무를 하고 제대를 했는데 지금도 전쟁통에서 얻은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중이라고 설명을 했더니 청년의 차를 세웠던 경관은 별안간 청년에게 거수경례를 하더니

 아하 그랬군요!

 나라를 위해서 싸워준 청년을 존경합니다. 라고 말하더니

 우리 아들도 같은부대에 있었겠네요.

 그리고는 청년에게 질문을 하나 더  했습니다.

 청년이 괜찮다면 내가 청년을 안아보아도 되겠는가?

청년은 의아했지만 그경관의 눈빛이 너무나 간절하여서 차에서 내려서 그경관의 품에 안기니 그순찰 경관은 청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젊은청년을 보니 내아들이 생각이 나서...

 내아들도 아프가니스탄에 갔었는데 돌아오지를 못했구려!

 청년과 순찰경관은 서로를 부등켜안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진이었다.

죽음은 피해갈수 없는 것이다. 부자도, 가난한 이도,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도, 고운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도 꼭 오는 일이다.

나는 아직도 힘들어 하는 죽음들이 있다.

 몇년 전 나의 사랑하는 두오빠들이 같은 주중에 돌아가셨는데 한분은 목요일에, 또 한분은 토요일에 돌아가셨다.

 두분 다 암으로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두분이 3일차로 돌아가시는 일이 있을수 있을까!

 지금도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520번 다리를 건널때면 그넓은 하늘에 나의 사랑하는 오빠두분이 보인다.

 아직도 가을이 되면 오빠생각에 눈물 짓고 가슴이 아리다.

죽음은 피해갈수 없는 현실이다. 다만 죽음이라는 일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일인 것이다.

또  기억에 남는 죽음은 내가 일을 하면서 어느 정신병환자의 저소득층 아파트에 방문을 하면서 닥쳤던 너무나 가슴 아픈 상황이었다.

 그날도 평범하게 일을 하다가 3주째 나를 방문하지 않던 내고객 00를 만나러 가야해서 일을 빨리 마치고 매디슨에 있는 구건물( 1921 년도에 세워진 건물) 에 임시로 세들어 살고있던 조현병 환자를 찾아나섰다.

 이고객은 전화기를 몇번이나 신청해서 만들어주었는데도 전화를 자주 잃어버려서 그때에는 전화도 없었고 또 성격이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를 못해서 이아파트에 들어가서도 매니저와 이웃들에게 별로 좋은 평을 듣지못하던 고객이었다.

 그 정신병환자는 매달 우리 사무실로 찾아와서 한달에 한번씩 주사를 맞으며 치료를 받으며 담당 카운셀러를 매주 만나야하는 일이 자기의 의무였는데 3주째 나를 방문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내가 일주일동안 다른주로 출장을 다녀온 뒤라 그다음주에 금방 찾아가볼수가 없어서 그다음주로 미루고 어느정도 사무실일이 정리가 되어서 이고객이 사는곳에 찾아가게 되었다.

 내사무실에 있는 00타운에서 D 라인 버스를 타고 이고객이 살고있는 매디슨의 아파트를 찾아가서 우선 아파트로 들어가기 전 아파트입구에서 아무리 벨을 눌러도 소식이 없어서 매니저사무실에 들러서 매니저와 함께 다시한번 문을 두드려도 연락이 없자,

 그날은 그냥 사무실로 돌아오며 메모를 써놓았었다.

 000, 나 레지나 인데 꼭 연락해 주길!

 염려가 되어서 온것이거든?

 그리고 3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서 그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버스를 타고 9가에서 매디슨으로 걸어가는데 튼튼한우산이 세번이나 뒤집어지면서 갈길을 막았었다.

 비는 억수로 쏟아지고 바람까지 불어서 빗물에 내 겉옷은 거의 다 젖어서 몸시도 추운 그런날이었다.

 겨우 이고객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하여서 다시 문을 두드리니 또 대답이 없었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 매니저와 아파트관리인과 셋이서 이고객이 사는 아파트의 방문을 여는순간 우리세사람은 거의 미친사람처럼 소리를 질러댔었다.

 내가 만나려고 몇번을 다녀갔던 내고객 000가 머리가 다 터진채로 방바닥엔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는데 아마도 총으로 자기머리를 쏘았는지 머리가 다터진채로 죽어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무서웠어서 더 이상 쓰기가 싫다.

 이날 나는 충격으로 잠시( 6개월간) 회사를 쉬었었다.

회사엔 병가를 내고 정신과의사를 만나면서 충격을 상담받고 그리고도 많은시간이 흘렀어도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광경 그대로 생각이 나는 그처참했던 광경이 ….. 괴롭다...

 아는분 중 아들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다녀와서 가끔씩 자다가 벌떡일어나 헛소리를 한다고 한다.

 나는 그분의 아들을 위하여 내시간을 열어놓았다. 그리고는 그아들을 초대해서 가끔씩 만나고는 한다.

 전쟁통에 받은 상처를 조금이라도 돕기위하여…

죽음을 어떻게 이해 하는 것이,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는 일이,  최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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