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같은 인생아#1
2018-05-03 오전 9:35 KCR 조회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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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같은 인생아~ 라고 외치고 싶다!
CM 레지나는 지금상황에 대하여 반박할 의사가 있는가? 
Of course I am!
당연히 할말이 있습니다! 유어어너!
물론 나는 할말이 태산 같았지만 지금은 내가 말을 해서는 안되는 상황이라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숨을길게 내뱉은 다음 내옆에 있는우리프로그램의 카운셀러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변호사 000를 쳐다보았다.

나하고 이공판 때문에 벌써 셀수없을만큼의 미팅을 한 변호사 000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해 온 서류들을 펴더니 조목조목 설명을 이어 나갔다. 우리 사무실에서 붙여준 나의 변호사의 설명을 들어보면 틀린말이 하나도 없는데 상대방 변호사와 우리 고객인0는 뭐가 그리 당당한지 자신있게 일어나 왜자기네들이 카운셀러의 횡포에 당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리적인 듯한 글들을 낭독해 나갔다.

상대방변호사의 낭독변론에 너무나 기가막혔지만 내 기분나쁜 감정표현이 하나도 이득이 될수 없기에 그냥 아무런 동요없이 잘 경청하는 자세로 상대방변호사의 낭독을 듣고 있자니 가슴속에서는 끓고있는 커다란 불들이 온몸으로 퍼지기 일보직전 인데도 겉으로는 내색도 않고 상대방 변호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하기야, 그변호사가 잘못하는것은 아니니 그사람을 나무랄수는 없지만, 그래도 답답한 마음이 드는것은 어쩔수가 없다.
내용인즉, 우리 사무실에 몇년째 오면서 정신상담을 받고있는 홈리스인 0는  2년전부터 케이스가 나에게 배당되었었다.

0는 미국사람들보다는 동양사람 카운셀러를 찾기에( 아마도 동양카운셀러들은 쉽게 넘어갈 듯, 생각을 한 듯) 우리사무실에 유일한 동양여자인 나에게 0케이스가 배당되는 날  0는 그 큰 얼굴에 눈썹은 반달처럼 진하게, 그리고 입술은 연분홍색깔을 짙게 바르고, 검은 옷을 아래위로 치장을 하고서 사무실로비에서 나하고의 첫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0는 남편이 20여년전에 말없이 사라져버렸다.
0의 남편이 사라진  처음 몇년 동안은 남편이 사라진 이유를  알수없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된 것은0의 남편은 이미 성전환수술을 마치고 이름까지 개명을하고서는 빌이라는 이름을 베로니카로 바꾸면서 그동안 남자로서 살아왔던 생활을 뒤로 하고  이미 조신하고 우아한 ( 몸은 아직 변화중이라 아직도 우락부락한면이 보이기는 하지만 )여자로서 의 삶을 살고 있었다. 물론 두사람사이에는 다 장성한  딸이 하나있었는데 딸은 다른주로 공부하러 간다고 하고서는 연락을 거의 안하고 지낸다고..
아빠가 별안간 여자로 변한것에 대한 충격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하는데...
0에게는 유일하게 자식은 딸하나 밖에 없는데, 그 딸하고도 거의 연락이 안되어 외롭고 쓸쓸하다고 말을 하면서 눈가에 눈물이 맺혔었다.

0는 아시안계  어머니와 미국계 아버지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는데 두나라의 좋은 유전자를 이어받아서인지 눈이 아주 크고 맑고 몸무게는 좀나가지만 키도 적당하며 꽤나 매력적인모습의 여자였다. 나이는 54살 그런데 그동안 당뇨합병증으로 인하여 발에 염증이 생기고 무릎에 문제가 와서  잘걷지못하게 되면서 의사의 처방아래 워커를 사용해서 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말하는데 전혀지장이 없고 걸어다니는데 별지장이 없으니까 주정부사무실에 신청한 신체불구자들이 받을수있는 베네핏에서 불합격을 받았단다. (왜 내가 남의일처럼 얘기를 하냐면 내가 이케이스를 맡기 전, 전의 카운셀러의 기록과 본인의 얘기에 근거하여 얘기를 하는것이기 때문이다.)
나하고 0하고 매주 만나서 상담을 하는데 0는 자기의 고달픈 홈리스 생활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나 많이 생겨서  우울증이 심하여 약을 먹지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수없는 상태까지 이르렀는데 그런 와중에도 살집이 없어서 이곳저곳, 친구네집 등을 전전하고 있었다.

예전에 남편하고 함께 살던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성전환후 여자가 된 남편이 그냥 말없이 떠나버리고 아픈0는 일을 할수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그동안 살아왔던 집을 은행에 다시넘기고 난후 이곳저곳을 방황을 하고 있었다. 그때에 0가 우리사무실 문을 두드렸고 우리 사무실프로그램에서 혜택을 주는 매달 정신과의사 상담과 더불어 약을 처방받을수 있게 되고 매주마다  카운셀러를 만나면서 상담을 받으며 필요한 베네핏을 찾을수가 있었다. 정부에서지급하는 후드스탬프, 그리고 약간의 생활비 보조, 그런데 아직 정확히 디스에이블로 확정된것이 아니라서 0가 받는생활보조비는 한달에 200불정도였다.

몇년동안 친구집이나, 남의 집 거실로 전전하며 남의 신세를 지기도 하고 때로는 비오는 시애틀거리의 남의 비지니스 처마밑에서 두꺼운 골판지를 깔고 잠을 청하기도 하기를 몇년째 0의 몸은 더욱 나빠지고 정신적으로도 더 피폐해졌지만 그래도 다행으로  2년동안 임시로 거주할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 임시 쉘터프로그램에 들어갈수가 있게 되어서0는 2년동안의 쉘터의 삶을 잘살고 있던 중에 내케이스로 오게된 것이었다. 
이제 내가 해야할 일은 0의 경제적인 베네핏을 찾아주면서 정신상담과 신체건강을 체크엎하면서 모니터링 하고 필요한 일들을 도와주는일이었다.
 오랜시간 전에 내가 잘 아는 중국친구가 중국학생들 하고 홈리스쉘터에서 봉사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었다. 

얼마후, 그중국 그룹들과 함께 0가 살고있는 2년기간의 임시쉘터에 맛있는 중국음식과 이들이 준비한 게임등을 준비하고  이들에게 대접을 한적이 있었다. 25명 정도의봉사학생들과 중국어른들이 토요일 오후의 시간을 이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이들이 살고있는 주위를 청소로 도와주기도 하고 정말 유익하고 보람된 시간을 보냈었다.

이들 중국사람들 봉사자들이 이곳 쉘터로 온다는 날이 토요일이었는데 나는 토요일날 근무를하지 않지만 담당자가 있어야 한다는조건에 이들이 살고있는 임시쉘터에 공연시간보다 조금 늦게 쉘터로  가게 되었는데 내가 이들의공연이 시작되고 나서 15분정도 늦게 들어가니 내고객이었던 0가 문앞에서 나를 기다렸다며 너무나 반갑게 뛰어나와 나를 반기고 그리고 나의 친구들이 도네이션해준 겨울 장갑 한박스가 내차에 있었는데 자기가 나보다 힘이 더쎄기 때문에 자기가 들어야 한다면서 내차가있는 파킹장까지 걸어나와서는 장갑박스를( 20 파운드정도의무게) 번쩍 들어서는 안으로 옮겨주었었다. 

그리고는 공연을 마친후 모든 쉘터거주자들을 위한 만찬에서 음식을 서브하는데 앞장을 서고는 음식도 서브를 하고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에 나도 참 신기해하면서도 정말 다행이네 저렇게 즐거워하니까… 라고  생각을 하고는 그날 행사를 잘마쳤었다.

행사를 마친날이 토요일이었는데  월요일 사무실로 나와서 토요일 있었던 행사에 관하여  리포트를 작성하는데 누가, 언제, 어떻게, 무슨일 등등의 인포메이션을 쓰는데 도와준 사람들 내용에 내고객인 0가 내차에서 장갑박스를 날라주고, 그리고 그팀이 가지고 온 키보드도 들어주고… 그외에 여러가지 도움을 주었다 라고 쓴내용이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후 0가 신청한 디스에이블피플 베네핏공판에 가야하는데 공판날이 가까이 오는데 0에게서 연락이 오지를 않았다.
나는 0에게 연락이 되지를 않아 0가 살고있는 임시쉘터로 연락을 해보니 0가 없단다.

나는 이번공판에 0가 나가지 않으면 다시 재신청하기가 어려워서 사방팔방으로 0를 찾아보았지만 시간이 다가오는데 0에게서는연락이 없었다.
0가 나에게 보여준 공판 시간은 11시30분인데 시간은 벌써 11시를넘어가고 있어서 난 아무래도 담당카운셀러인 내가 미리 가서 판사들에게 0의 다음 공판날을 사정을 해서라도 받아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내사무실 벨타운에서 법원이 있는곳까지 정말 버스안에서 발을 동동굴려가면서도착을 했다.

킹카운티코트하우스에 들어가서  고객인0의 이름을 얘기를 하고 공판정을 물어보니 공판정이 다른곳으로 바뀌었단다. 거기가 어디냐고물어보니 그때 내가 있던 곳에서 4블락을 더 북쪽으로 가야하는 곳이였다. 나는 킹카운티코트하우스를 나와서 그야말로 발이 안보이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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